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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차별금지법(약칭 장차법)이 시행된 지 벌써 17년이 넘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 법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를 제대로 인식한 게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단순한 복지 지원과는 결이 다른 이야기, '권리'를 중심에 놓은 제도라는 점에서 처음 알게 됐을 때 조금 다르게 받아들여졌습니다. 차별을 받았을 때 참거나 혼자 감당하는 게 아니라, 공식 절차를 통해 시정을 요구할 수 있다는 것, 그게 이 글의 핵심입니다.
차별금지법이 말하는 '차별'의 범위, 생각보다 넓습니다
장애인차별금지법 제4조는 차별 행위를 꽤 넓게 규정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대놓고 차별하는 경우만 해당되는 게 아닙니다. 이 법에서 특히 눈여겨볼 개념이 바로 '간접차별'입니다. 간접차별이란 형식상으로는 공정하게 보이는 기준을 적용하더라도, 그 결과가 장애인에게 불리하게 돌아오는 경우를 말합니다. 예컨대 계단만 있는 시설에 "누구나 동일하게 입장 가능"이라고 안내해도, 휠체어 이용자에게는 사실상 거부가 되는 식이죠.
또 하나 중요한 개념이 '정당한 편의 제공 거부'입니다. 여기서 정당한 편의란 장애인이 장애가 없는 사람과 동등하게 같은 활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장애의 유형과 정도를 고려해서 제공하는 시설, 도구, 서비스, 인적 지원 등을 통틀어 말합니다. 정당한 사유 없이 이를 거부하는 것도 차별 행위에 해당합니다. 저는 이 부분을 처음 읽었을 때, 꽤 많은 일상적 상황이 사실 법적으로는 차별에 해당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차별금지 영역도 단순히 취업이나 교육에 그치지 않습니다. 법이 명시하고 있는 영역을 보면 범위가 상당합니다(출처: 국가법령정보센터 장애인차별금지법).
- 고용, 교육, 재화와 용역의 제공 및 이용
- 시설물 접근·이용, 이동 및 교통수단, 정보접근·의사소통
- 문화·예술·체육활동, 사법·행정절차 및 참정권
- 모·부성권, 가정·복지시설에서의 차별금지, 건강권
- 괴롭힘 금지, 장애여성·장애아동·정신적 장애인에 대한 차별금지
이걸 보고 나서 "차별이라는 게 특별한 경우에만 해당하는 이야기"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실상은 정반대에 가깝다고 느꼈습니다. 일상에서 은근하게,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배제가 훨씬 많고, 그게 법적으로 시정 가능하다는 사실이 오히려 생소하게 느껴지는 사람이 많을 것 같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 진정절차, 어떻게 흘러가나
차별을 경험했을 때 어디에 신고해야 하는지 몰라서 포기하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을 것 같습니다. 저도 처음엔 그 절차가 막막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조금 정리해 두면 좋겠다 싶었는데, 국가인권위원회의 진정절차는 크게 다섯 단계로 이루어집니다.
진정이 접수되면 예비조사를 거쳐 각 조사본부로 이관되고, 담당 조사관이 진술서와 자료 제출을 요구하거나 피진정인을 출석 조사합니다. 이후 조사결과보고서가 작성되면 소위원회에서 심의·의결이 이루어지고, 권고, 기각, 각하 등의 결정이 내려집니다. 이때 '조정제도'라는 방식도 병행될 수 있는데, 조정이란 당사자 간의 자발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절차로, 소송보다 훨씬 유연하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
긴급한 상황이라면 국가인권위원회법 제48조에 따른 긴급구제조치 신청도 가능합니다. 긴급구제조치란 차별이나 인권침해가 명백하고 피해가 돌이키기 어려운 경우, 조사 완료 전에 임시로 구제 조치를 취하는 것을 말합니다. 사실 저는 이 조항이 있다는 걸 알고 나서야 "정말 급한 상황에도 대응 가능한 구조구나"라고 안심이 됐습니다.
상담 방법도 꽤 다양합니다. 전화(국번 없이 1331), 방문, 우편, 이메일, 모바일웹 모두 가능하고, 수어상담은 107 손말이음센터 영상 중계 서비스를 통해 이용할 수 있습니다(출처: 국가인권위원회 공식 홈페이지). 접근성 측면에서 이전보다는 나아졌다는 인상이지만, 실제로 활용하기까지의 심리적 문턱은 여전히 높을 수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권리구제 제도, 충분한가에 대한 솔직한 시각
"이런 제도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의미 있다"는 시각이 있는 반면, "절차가 너무 복잡하고 결과까지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저는 솔직히 둘 다 일정 부분 맞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권리구제 시스템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차별을 당한 사람에게 심리적 안전망이 된다는 건 분명한 사실입니다. 최소한 "혼자 싸우지 않아도 된다"는 메시지를 사회가 공식적으로 발신하는 셈이니까요.
하지만 현실에서 조사 결과가 나오기까지 수개월이 걸리는 경우도 있고, 위원회 권고에 피진정인이 반드시 따라야 하는 강제 이행 구조가 아니라는 점은 분명 한계입니다. 권고 불이행 시 명단 공표 등의 조치가 있긴 하지만, 실제 억지력이 얼마나 되는지는 또 다른 이야기입니다. 제 경험상 제도가 잘 설계되어 있어도, 실제 이용자가 접근하기 쉬운가의 문제는 따로 봐야 한다고 느꼈습니다.
부산 지역의 경우 부산광역시장애인권익옹호기관(051-715-8295~6)이 차별금지 및 인권보장 활동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인권실태 조사 모니터링, 차별·인권침해 상담, 시책 개발 및 제안 등을 수행하는 이 기관은 국가인권위원회와는 별도로 지역 밀착형 지원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지역 기관이 있다는 점이 중요한 이유는, 서울 중심의 시스템으로는 지방에서 발생하는 차별 사안에 신속하게 대응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한 번의 시정 권고가 비슷한 상황의 다른 사람들에게도 변화를 만들 수 있다는 점, 저는 이게 이 제도에서 가장 중요한 사회적 파급력이라고 봅니다. 개인의 문제 해결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관행을 바꾸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것, 그래서 이 절차는 당사자가 아닌 사람에게도 관심을 가져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정리하면, 장애인 차별 시정 제도는 단순히 피해를 보상받는 수준이 아니라 '권리'를 기준으로 사회를 재구성하는 방향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이 제도가 더 많이 알려지고, 더 쉽게 접근 가능해질수록 차별은 줄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차별을 경험했거나 주변에서 목격했다면, 국가인권위원회(1331) 또는 지역 장애인권익옹호기관에 먼저 상담 전화를 해보시길 권합니다. 절차가 두렵게 느껴진다면 상담부터 시작해도 충분합니다.